자산의 크기는 앞서 봤다. 이번엔 장부의 반대편, 빚이다. 빚이라고 하면 보통 가난의 신호로 읽힌다 — 돈이 없으니 빌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의원들의 부채를 펼쳐 보면 그 직관이 정반대로 뒤집힌다. 가난해서 빚을 지는 게 아니라, 부동산이 많을수록 빚도 많다. 부동산 상위 20% 의원의 평균 채무는 12.6억으로, 하위 20%(1.3억)의 열 배에 가깝다.
빚은 왜 따로 들여다봐야 하나
공직자 재산공개는 국회의원이 가진 자산만 드러내는 제도가 아니다. 자산의 맞은편에는 채무가 함께 신고된다. 부동산·예금·주식 같은 적극재산에서 금융기관 대출과 사인 간 채무 같은 소극재산을 빼야 비로소 한 사람의 순자산이 나온다. 그런데 보도와 화제는 늘 적극재산의 총액, 곧 누가 얼마를 가졌는지에만 쏠린다. 장부의 반대편인 빚은 좀처럼 따로 들여다보지 않는다. 빚은 사적인 사정으로, 혹은 형편이 어려운 신호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채무를 자산과 나란히 놓고 보면, 통념과는 정반대의 그림이 나타난다. 빚이 많은 쪽은 형편이 어려운 의원이 아니라, 오히려 부동산을 가장 많이 가진 의원이었다. 이 글은 2025년 재산공개에서 부동산을 보유한 의원을 가액 순으로 다섯 그룹(5분위)으로 나누고, 각 그룹의 평균 채무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따라간다. 핵심 질문은 ‘의원들이 빚을 얼마나 졌나’가 아니라 ‘누가 빚을 지는가’이다.
부동산 분위가 오르면 채무도 계단처럼 오른다
부동산 가액 순으로 의원을 다섯 그룹으로 줄 세우면, 채무가 계단처럼 따라 오른다. 부동산이 가장 적은 1분위(평균 3.4억)의 빚은 1.3억. 한 칸 올라갈 때마다 빚도 차곡차곡 불어, 가장 많은 5분위(평균 62.9억)에 이르면 평균 빚이 12.6억이다. 하위 20%의 열 배에 가깝다. 자산과 부채가 나란히 커지는, 교과서적인 레버리지 곡선이다.
2분위(부동산 7.2억)의 평균 채무는 2.8억, 3분위(11.2억)는 2.9억으로 가운데 두 칸은 거의 어깨를 나란히 한다. 그러나 4분위(19.0억)에서 4.4억으로 한 단 뛰고, 5분위에서 12.6억으로 다시 가파르게 솟는다. 부동산이 늘어나는 폭보다 채무가 늘어나는 폭이 위로 갈수록 커진다는 뜻이다. 계단은 등간격이 아니라, 꼭대기로 갈수록 한 칸의 높이가 높아지는 모양이다.
빚은 결핍이 아니라 지렛대다
보통 채무는 결핍의 신호다. 그런데 의원들의 장부에서는 정반대로 읽어야 한다. 빚이 자산을 따라 커진다는 건, 그 돈이 생계비가 아니라 ‘더 큰 자산을 쥐기 위한 지렛대’였다는 뜻이다. 빚을 끼고 부동산을 사고, 그 부동산이 오르면 다시 더 큰 빚을 감당할 여력이 생긴다. 가진 쪽일수록 더 적극적으로 빌려 자산을 굴렸다는 흔적이, 이 계단에 그대로 새겨져 있다.
이것은 부동산 시장의 작동 원리이기도 하다. 담보가 클수록 더 큰 대출이 나오고, 더 큰 대출은 더 비싼 자산을 살 수 있게 한다. 빚은 자산의 발목을 잡는 추가 아니라, 자산을 끌어올리는 사다리로 쓰인다. 4분위에서 5분위로 한 칸 올라갈 때 부동산은 19.0억에서 62.9억으로 세 배 넘게 뛰고, 채무도 4.4억에서 12.6억으로 세 배 가까이 함께 뛴다. 자산이 커진 만큼 빚을 일으킬 담보 여력도 커지기 때문이다. 1분위 의원에게 1.3억의 빚은 무게이지만, 5분위 의원에게 12.6억의 빚은 도구다. 같은 ‘채무’라는 단어가 분위에 따라 정반대의 의미를 갖는 것이다.
평균의 착시일까 — 단조성이 답한다
그렇다면 이 계단은 통계의 착시는 아닐까. 평균은 극단값 하나에 쉽게 휘둘린다. 5분위에 수십억대 빚을 진 한두 명이 섞여 있다면, 평균 12.6억은 부풀려진 숫자일 수 있다. 충분히 가능한 반론이다. 그러나 계단의 핵심은 5분위의 높이가 아니라, 1분위에서 5분위까지 단 한 번도 내려앉지 않고 오른다는 단조성에 있다. 평균을 끌어올리는 소수의 큰 빚이 있더라도, 다섯 칸이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한두 명의 예외로는 다섯 칸짜리 계단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정당으로 잘라도 순서는 같다
같은 패턴은 정당 사이에서도 반복된다. 2025년 채무를 신고한 의원은 232명, 1인 평균 5.8억. 정당별로는 국민의힘 7.2억, 더불어민주당 5.2억으로 — 부동산 평균이 컸던 쪽이 빚도 컸다. 재산을 다룬 앞선 통계와 정확히 같은 순서다. 부동산 분위에서 드러난 ‘자산↔채무’ 동행이, 정당이라는 다른 잣대로 잘라도 그대로 유지된다는 뜻이다. 빚의 분포는 정파의 문제가 아니라 자산 보유의 함수에 가깝다.
그 빚은 어디서 빌렸나
빚이 어디에 쌓여 있는지도 자산의 동행을 다시 비춘다. 본 사이트의 트렌드 채무 집계(채권기관별)를 보면, 의원들의 채무는 모두 821.6억으로 신고됐고 보유 건수는 537건이다. 다만 이 집계는 부동산 분위별 교차가 아니라 ‘어느 금융기관에서 빌렸나’를 기준으로 한 별도 집계라, 위 계단의 분위별 평균과는 산출 단위가 다르다. 채권기관을 줄 세우면, 가장 많은 의원이 빚을 진 곳은 농협은행(81명)이고, 신고가액 총합이 가장 큰 곳은 신한은행(185.2억)이다. 상위 다섯 곳(신한·하나·농협·국민·우리)이 전체 신고가액의 약 7할을 차지하고, 캐피탈·카드·보험사의 채무는 액수로는 작은 꼬리에 머문다. 정당별로는 더불어민주당이 91명으로 가장 많은 의원이 채무를 신고했다. 의원들의 빚은 사채가 아니라 제도권 은행의 담보 대출에 압도적으로 몰려 있다는 뜻이다 — 자산을 굴리는 지렛대가 어디서 공급되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자산의 그림자로서의 빚
결국 자산의 격차는 부채의 격차로, 부채의 격차는 다시 레버리지의 격차로 이어진다. 더 많이 가진 쪽이 더 큰 담보로 더 큰 빚을 일으키고, 그 빚으로 다시 더 큰 자산을 쥔다. 이것은 어느 한 의원의 선택이 아니라, 담보·대출·자산가격이 맞물려 돌아가는 구조의 산물이다. 빚을 적게 진 1분위 의원이 더 검소하다고 말할 수 없고, 빚을 크게 진 5분위 의원이 더 무리했다고 말할 수도 없다. 같은 규칙 위에서 출발선이 다를 뿐이다.
왜 굳이 채무까지 분위로 쪼개 보는가. 적극재산의 총액만 보면 ‘누가 부자인가’는 알 수 있어도, 그 부가 어떻게 불어났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채무를 자산 옆에 세워야 비로소 ‘레버리지’라는 작동 원리가 드러난다. 12.6억이라는 5분위의 빚은 위기의 신호가 아니라, 가장 큰 자산을 떠받치는 가장 큰 받침대다.빚은 가난의 그림자가 아니라 자산의 그림자였다 — 가진 쪽이 더 크게 빌려 더 크게 굴리는 구조다.
집계 방법·출처 · 부동산 가액 5분위별 평균 채무는 공직자 재산공개(2025)의 자산·채무 항목을 의원별로 교차해 별도 집계한 값으로, 본 사이트 트렌드의 채무(채권기관별 집계)와는 산출 단위가 다르다. 채무에는 금융기관 대출과 사인 간 채무가 모두 포함된다. 신고는 매년 말 스냅샷이며, 공시가 기준이라 실제 담보가치와 다를 수 있다. 수치는 특정 의원이 아니라 그룹·정당 단위 집계다. 채권기관별 맥락 수치는 본 사이트 트렌드(채무)에서 재집계했다. 데이터 집계 · 국레이터(kookra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