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재산공개에는 합법적으로 가족 재산을 공개하지 않을 수 있는 장치가 있다. 독립생계 중인 직계존비속의 재산은, 요건을 충족하면 신고서에서 제외할 수 있다. ‘고지거부’다. 따로 사는 부모나 경제적으로 독립한 자녀의 사생활까지 모두 공개하라는 건 과하다는 취지다. 문제는 이 장치를 쓰는 의원이 한둘이 아니라는 데 있다. 2025년 기준 둘 중 하나꼴(49.6%·140명)이다. 더 들여다보면, 이 선택은 무작위로 퍼져 있지 않다. 자산이 많은 쪽에서 더 자주 나타난다.
고지거부란 무엇이고, 왜 합법인가
고위공직자는 본인뿐 아니라 배우자, 그리고 직계존속(부모·조부모)·직계비속(자녀·손자녀)의 재산까지 함께 신고하고 공개하도록 돼 있다. 가족의 명의를 빌린 우회 축재를 막기 위해서다. 그런데 공직자윤리법은 여기에 단서를 둔다. 독립적으로 생계를 꾸리는 직계존비속에 한해, 본인이 신청하면 그 가족의 재산을 공개 대상에서 뺄 수 있게 한 것이다. 이것이 ‘고지거부’다. 따로 사는 노부모나 경제적으로 독립한 성년 자녀의 사생활까지 들춰서는 안 된다는, 그 자체로는 일리 있는 사생활 보호 장치다.
그래서 고지거부는 위법이 아니다. 신청 요건만 충족하면 허용되는 합법적 선택이다. 다만 합법이라는 사실과, 그 선택이 재산공개 제도의 취지를 얼마나 좁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재산공개의 목적이 ‘고위공직자의 재산이 어떤 경로로 불었는지를 사회가 함께 들여다보는 것’이라면, 가족 한 명이 신고서에서 빠질 때마다 확인 가능한 정보도 줄어든다. 공개 제도 안에 합법적 비공개 영역이 생기는 셈이다.
둘 중 하나가 쓴다 — 49.6%라는 숫자
2025년, 직계존비속 재산을 한 명이라도 고지거부한 의원은 140명, 전체의 49.6%다. 절반에 육박한다. 사생활 보호를 위한 예외 조항이었던 것이, 이제는 예외라 부르기 어려울 만큼 흔한 선택이 됐다. ‘특별한 사정이 있는 일부’가 쓰는 장치라기보다, 국회 안에서 널리 쓰이는 표준 선택지에 가까워졌다.
해마다 더 많이 쓴다 — 제도가 익숙해질수록 좁아지는 창
더 눈여겨볼 건 이 수치가 머문 자리가 아니라 움직인 방향이다. 비율은 2016년 39.2%에서 출발해 10년간 꾸준히 올랐고, 2022년부터는 줄곧 절반 언저리에 머문다. 공개 제도가 해를 거듭하며 정교해지고 익숙해질수록, 역설적으로 비공개로 남는 칸도 늘어났다. 투명성을 높이려고 다듬어 온 제도 안에서, 공개되는 정보의 폭은 일부 줄어든 셈이다.
왜 이런 역설이 생길까. 제도가 자리를 잡는다는 것은 곧 신고 양식과 절차, 그리고 ‘무엇을 어디까지 제외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학습이 함께 쌓인다는 뜻이기도 하다. 합법적으로 허용된 선택지는, 그 사용법이 널리 알려질수록 더 많이 선택된다. 고지거부의 완만한 우상향은 제도의 단순한 실패라기보다, 합법적 여백이 시간과 함께 관행으로 굳는 과정을 보여준다.
누구의 재산이 빠지나 — 부모와 장성한 자녀
그렇다면 누구의 재산이 신고서에서 빠질까. 주로 부모와 장성한 자녀다. 어머니(68건)가 가장 많고, 장남(56건)·아버지(50건)가 뒤를 잇는다. 관계별 분포 자체는 제도의 명분과 어긋나지 않는다. 고지거부 대상은 본래 독립생계의 직계존비속이니, 부모와 성년 자녀가 상위에 오르는 것은 자연스럽다. 문제가 드러나는 건 분포가 아니라 그 ‘규모’에서다.
대부분은 한두 명을 고지거부한다. 그런데 가족 3명 이상의 재산을 고지거부한 의원도 16명에 이른다. 그중 한 명은 여섯 명을 한꺼번에 신고서에서 제외했다. 이 경우 한 사람의 재산 신고서는 사실상 본인 중심의 문서에 가까워진다. 사생활 보호라는 예외가 가족 단위로 넓어질수록, 공개로 확인할 수 있는 범위는 그만큼 줄어든다.
‘얼마나’가 아니라 ‘누가’ 쓰는가
여기까지는 ‘다들 그런가 보다’ 할 수 있다. 절반이 쓰는 합법적 선택이라면, 특정인을 탓하기도 애매하다. 그러나 이 글이 던지려는 물음은 처음부터 ‘얼마나 많이 쓰느냐’가 아니었다. 진짜 물음은 ‘누가’ 쓰느냐다. 같은 49.6%라도, 그 절반이 누구로 채워지느냐에 따라 의미가 갈린다. 모두가 고르게 쓰는 것과, 특정 집단이 더 자주 쓰는 것은 전혀 다른 그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데이터를 자산분위로 다시 갈라 보았다. 의원들을 순자산 기준으로 줄세운 뒤, 상위 구간과 중간 구간의 고지거부율을 비교한 것이다. 결과는 명분과 정면으로 부딪힌다.
순자산 상위 20% 의원의 고지거부율은 75.0%다. 중간 구간(약 41%)의 1.8배다. 자산이 많을수록 고지거부를 더 자주 쓴다. ‘독립생계 중인 가족’이라는 제도의 명분과는 별개로, 검증 필요가 큰 재산일수록 신고서의 시야에서 빠질 가능성이 더 커진다. 사생활 보호라는 중립적 언어로 설계된 장치가 실제로는 자산 상위층에서 더 많이 쓰이는 것이다.
‘평균을 흔든 한 명’이라는 반론, 그리고 재반박
이 대목에서 정당한 반론이 가능하다. 75.0%라는 상위 구간 비율도, 여섯 명을 한꺼번에 가린 그 한 명처럼, 소수의 극단 사례가 평균을 끌어올린 결과일 수 있지 않은가. 표본이 작은 구간일수록 한두 명의 선택이 비율을 크게 흔든다 — 통계를 읽을 때 마땅히 의심해야 할 지점이다.
그럴듯하지만, 그것으로 격차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핵심은 한 명의 극단값이 아니라 상위 구간 전체가 중간 구간을 1.8배 웃돈다는 ‘방향’에 있기 때문이다. 한두 사례를 덜어내도 ‘부유할수록 더 자주 쓴다’는 기울기 자체는 남는다. 극단 사례는 그 기울기를 과장할 수는 있어도, 없는 기울기를 만들어 내지는 못한다. 질문은 다시 ‘얼마나’가 아니라 ‘누가’로 돌아온다.
여야가 없다 — 진영으로 설명되지 않는 행동
그렇다면 이 쏠림은 진영의 문제일까. 한쪽 정당의 도덕성 문제로 환원하면 이야기는 간단해진다. 그러나 데이터는 그 손쉬운 결론도 막아선다. 2025년 더불어민주당 67명, 국민의힘 66명으로 양당이 사실상 동률이다. 재산 규모는 정당 따라 차이가 나지만, ‘가족 재산을 비공개한다’는 선택 앞에서는 여야가 거의 같은 보폭으로 걷는다.
이는 고지거부가 특정 진영의 일탈이라기보다, 가용한 선택지가 주어졌을 때 누구든 비슷하게 반응하는 행동임을 시사한다. ‘비공개할 유인이 큰 쪽이 더 자주 쓴다’는 경향은 진영을 가로질러 작동한다. 정당색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다.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규칙이다
그래서 이건 누구 하나를 탓할 일이 아니다. 자산이 많을수록 더 자주 쓰고, 거기에 진영 차이도 거의 없다면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규칙이다. 합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누구나 합리적으로 같은 선택을 한다면, 그 선택이 쌓여 만든 결과를 두고 개인을 비난하는 것은 과녁을 잘못 겨눈 것이다.
재산공개 제도의 취지가 고위공직자의 재산이 어떻게 불었는지를 사회가 함께 지켜보는 데 있다면, 정작 큰 재산 앞에서 확인 가능한 정보가 줄어드는 지금의 구조는 허용 범위를 다시 들여다볼 때가 됐다는 신호다. 고지거부를 없애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생활 보호라는 본래 취지는 지키되, 검증의 필요가 큰 자리에서 정보가 먼저 줄어드는 이 역설을 어떻게 좁힐지가, 데이터가 가리키는 다음 질문이다.
왜 이 수치가 중요한가
재산공개는 고위공직자가 사회와 맺는 신뢰의 최소 단위다. 유권자가 한 정치인을 판단할 때 기댈 수 있는 몇 안 되는 1차 자료이기 때문이다. 그 자료에서 가족 한 명이 빠질 때마다, 우회 축재나 이해충돌을 가려낼 창은 좁아지고, 유권자의 판단 근거도 그만큼 얇아진다. 절반이 고지거부를 쓴다는 사실은, 절반의 신고서에서 그 검증 가능성이 합법적으로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숫자 하나가 충격으로 끝나지 않고 제도의 질문으로 이어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집계 단위·출처 · 본 집계는 공직자 재산공개의 ‘고지거부’ 항목을 기반으로 한 별도 집계로, 본 사이트의 trend(보유 자산) 데이터와는 산출 단위가 다르다(trend는 부동산 등 보유 자산 카테고리이며 고지거부 여부를 담지 않는다). 고지거부는 불법이 아니다 — 공직자윤리법은 독립생계 중인 직계존비속의 고지거부를 허용한다. 다만 그만큼 유권자가 검증할 수 있는 정보가 줄어든다. 연도·관계·자산분위·정당별 수치는 특정 의원이 아니라 전체·집단 단위 집계다. 데이터 집계 · 국레이터(kookrator).